부마민주항쟁 : 부산 및 마산 지역 중심으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

부마민주항쟁

1. 부마민주항쟁이란?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말하며, 박정희의 제4공화국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을 말한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민주화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2. 배경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를 구축해서 10년 넘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었다.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야당을 탄압하는 독재적인 체제였다. 그런 유신체제는 민주주의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불만이 쌓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또한, 1970년대는 한국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이룬 시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갈동이 심화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과 재야 세력의 민주화 운동이 화라성화되고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게 되었다.

 

 

 

3. 전개

부마민주항쟁은 부산대학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당시 부산대 학생들이 유신체제에 부당성을 규탄하면 시위를 펼쳤고 이 시위가 점차 규모가 커져 부산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마산시위는 부산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유신철폐, 독재타도 등을 외쳤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부마민주항쟁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서울에서는 2만 명 이상이 모여서 시위를 펼쳤고, 대구와 광주 등 일파만파 사위는 퍼져나갔다.

 

박정희 정권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데 결국 부산과 마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경을 동원해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천명 넘게 연행해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시켰다. 그리고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나왔다.

 

4. 결과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유신정권은 막을 내렸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 국민들이 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부마민주항쟁이다.

 

5. 의의

부마민주항쟁은 학생 운동이나 소수 명망가들에게 국한되어 있던 그 어떤 민주화운동보다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왜냐하면 단순 소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참여를 넘어 대중들이 광범위하게 개입하게 된 거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주 참여층에 하층 도시민 등 노동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당시 답보상태에 있던 민주화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와 시민 참여라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6. 영상

50분 정도 되는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상이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부마민주항쟁부마민주항쟁

7. 마무리

역사는 반복된다고 부마민주항쟁의 당사자인 박정희의 둘째 딸인 박근혜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부마민주항쟁과 비슷한 범국민퇴진운동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리고 2019년 부마민주항쟁은 항쟁 40년을 맞이해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되었고, 그리하여 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정부행사로 치러졌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연결되는 민주화 대장정의 큰 줄기를 맡고 있는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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