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시대 구국영웅

강감찬

강감찬 소개

강감찬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장군으로,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고려의 영웅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감찬을 무신이자 장군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글공부를 했던 문관이었다고 한다.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여 애국심과 의지를 가지며 역사적인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경력

948년에 현재의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태어났으며, 983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거란의 1차 침입 당시에는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1011년에는 거란의 2차 침입이 일어나자, 직접 고려군을 이끌고 거란군을 물리쳤다. 이후 거란의 3차 침입이 일어나자, 고려군을 이끌고 거란군을 귀주에서 크게 물리쳐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그 후로도 강감찬은 고려의 국방을 강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인생을 살았다.

 

 

 

인품

강감찬의 인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일화만으로도 충분하다.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찌르고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강감찬에게 현종은 친히 마중을 나가 얼싸안고 환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불어 중신들을 부르고 주연상을 성대하고 베풀었는데, 한창 주흥이 무르익어갈 즘 강감찬은 현종에게 건의한다.

 

"지금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상께서는 이를 살피시어 세금을 감면해 주시고, 백성들의 삶을 돌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귀주대첩

1) 요약

귀주대첩은 1019년 3월 10일 고려군이 거란군을 귀주에서 물리쳐 승리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는 고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히며, 강감찬의 승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거란은 1018년 3월, 소배압을 총지휘관으로 한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거란군은 개경을 향해 빠르게 진격하여 흥화진을 함락한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임명하여 흥화진을 수복하고 거란군을 막아달라고 명했다. 강감찬은 흥화진을 수복한 후, 거란군의 진로를 예상하여 귀주에 매복을 준비한다. 거란군은 흥화진을 함락한 후, 개경을 향해 진격을 계속했는데, 귀주에 도착하여 강감찬의 매복을 발견한다. 거란군은 강감찬의 매복을 피하기 위해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 순간 강감찬은 거란군의 방향을 예측하고 남풍을 이용한 기습 공격을 준비한다.

 

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강감찬은 고려군을 출동시켜 거란군을 공격했다. 거란군은 남풍을 등지고 고려군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거란군은 사기가 떨어지고 혼란에 빠졌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새찬 공격을 감행한 고려군은 거란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기에 이른다.

 

귀주대첩의 승리로 고려는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토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귀주대첩은 고려의 국력을 과시하고 당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바람이 전쟁과 무슨 상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도대체 바람 부는 게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을 해본 적이 없는 우리들의 무지에서 오는 궁금증이다. 혹시 바람이 심하게 부는 태풍이 올 때 밖에 나가본 적이 있는가? 그냥 가만히만 있어 소 바람이 심하면 움직이기는커녕 눈조차 뜨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시바삐 움직여 싸워야 하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이런 맞바람은 만다면 어떻게 될까? 거기다가 비까지 내리면 시야확보를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당시 기록을 예측해 보면 활강형 한랭전선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이것은 바람이 최대 20m/s로써 성인여성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바람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바람을 맞바람으로 맞았으니 화살을 쏴도 제대로 쏴지지도 않았을 테고, 눈뜨기 힘든 상황에서 10만이 아니라 100만이었어도 패잔병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3) 바람이 바뀌는 걸 어떻게 예측하나?

계절상 당시에는 북풍이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가끔씩 계절풍이 아닌 역풍이 부는 경우가 있긴 있다. 드물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강감찬이 예측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긴 하다. 하지만 당시에 장수들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기상을 관측하는 것이고, 강감찬의 당시 나이를 봤을 때 오랜 경험과 치밀한 사전 정보수집으로 해당 현상을 관측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기상이변이 나타나면서 고려군은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았을 테고, 거란군은 기세가 여지없이 꺾였을 것이다.

 

평가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구국영웅이자 정치적으로도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현종의 치세에 큰 도움을 준 명재상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문인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 등과 비견되는 명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리고 서희, 양규, 현종, 최영,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위인이기도 하다.

 

영상

 

강감찬귀주대첩

마무리

요즘 KBS에서 방영 중인 고려거란전쟁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최수종이라는 사극의 끝판왕이 강감찬으로 분해 연기를 펼치고 나머지 연기자들도 정말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 더군다나 전쟁씬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사극은 사극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화려하게 담아냈다.

 

귀주대첩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강감찬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고려거란전쟁을 놓치지 말고 시청해 보길 바란다.

 

 

 

 

귀주대첩 :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

귀주대첩이란? 귀주대첩은 1019년 고려군이 요나라군을 현재의 평안북도 구성시인 귀주에서 크게 물리쳐 승리를 거둔 전투를 말한다. 해당 전투는 유격전술, 청야전술, 망치와 모루 전술을 완벽

ordinarypersons.tistory.com

 

흥화진 전투 : 고려와 거란이 흥화진의 지배권을 두고 맞붙은 전투

흥화진 전투란? 흥화진 전투는 고려와 거란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고려군이 거란군을 크게 이긴 전투를 말한다. 홍화진은 서희가 거란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한 다음, 압록강 방면에 구

ordinarypersons.tistory.com